2019 02 27

휴 졸려 =_=
그냥 오늘까지는 그런 거려니

요 얼마간 멜랑꼴리아가 넘나 보고싶어서(겨울동안 다시 보고싶은 영화 좀 있었다. 근데 못봄. 집중력 모래알이라)
드디어 주말사이에 띄엄띄엄 보았는데 볼 때마다 참 좋아.
놀라운 결말 자체도 그렇지만 결말의 비주얼도 좋다.
우울증 판독영화니 뭐니 했지만(나도 커스틴 던스트 과-0-;;;) 서늘한 색감 멸망의 징후들 sf를 동화처럼 묘사하는 장면들, 신기한게 삶에 대한 긍정과 의지같은 장면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살고 살아있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짧은 삶에 대한 연민은 있었지만.
간만에 보고서 음악도 좋길래 찾아보니 사운드트랙이 있길래 잘 때 틀어놓고 잤다.
바그너 좋아ㅇㅇ 하면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모르지만.
그리고 가위눌린-.-
뭔가 서운한 느낌의 꿈이 찰나처럼 있었는데 점점 이것은 가위다 싶으면서 눌려벼려서 바로 풀었다.
가위 눌리면 다시 바로 잠들기가 꺼려지기 때문에 조금 더 있다 잤더니 어찌나 피곤하던지.
그래서 이제 자기 전에는 바흐를 듣기로-.-


앗, 그리고

잘 때 들으면 좋다니까 잘 때 듣겠어.
역시 발음이 넘나 아쉽지만(노래할 때 입을 좀 크게 벌려봐 라고 해주고싶;;) 그래도 좋은 점이 좋다.
더 듣고싶고.
그나저나 이 노래 때문에 옛날 더클래식 노래 다시 찾아봤는데 느닷없이 두렵지않아 에 빠짐;
“서로의 모든 것을 이해했었다는 그런 가슴 아픈 착각마저도
변한거야 변해버린 거야 너를 보내면서 울고있는 나 또한 그렇게
떠난거야 떠나버린 거야 흔들리는 나를 지키려고 떠나보낸 거야
그런 거야 그저 사는 거야 좋았던 기억만 남기면 돼 잊혀지는거야”
90년대 노래의 에고에는 비교대상 없이, 온전히 나 자체를 이야기하는 강인함이 느껴져서 좋다.
산뜻하게.


“내 침대는 평상시라면 한쪽 구석에 틀어박혀 있는 가장 조용한 생활공간이었겠지만 지금은 공적인 지위를 얻어 모두가 주목하는 곳이 되었다. 당분간 그곳은 몰래 금지된 책을 읽는 데 심취한다든가 혼자 촛불놀이를 한다든가 하는 것처럼 밤에 몰래 무슨 일을 꾸밀 수 있는 장소로서의 성격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베개 밑에는 평상시라면 매일 밤마다 습관대로 몰래 읽은 후에 마지막 힘을 다해 밑에다 감추어두곤 하던 책도 없다. 그리고 이 몇 주 동안에는 스테아르산 촛불이 녹으면서 생기는 용암의 흐름과 작은 난로들도 사라졌다. 그렇다, 근본적으로 병은 바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쥐 죽은 듯이하는 놀이, 내게 은밀한 불안감을 떨칠 수 있도록 해준 적이 한번도 없는 놀이를 빼앗아가 버렸다. 그것은 후일 같은 밤 시간의 끝자락에 하게 될 비슷한 놀이에 수반될 불안감을 예고해주는 것이었다. 병은 나에게 떳떳한 마음을 가져다주기 위해 찾아와야만 했던 것이다.”
새 일기를 쓰지못해 지난 일기에 붙여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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